섣불리 중동 붐 낙관하기 어려워

3월 28, 2010 by admin  
Filed under BOOK REVIEW, 변상욱의 News & Books

글 변상욱 CBS부산방송 본부장 | 뉴스와 책

《아부다비의 힘: 미래기업국가 경쟁력 벤치마킹 모델》

 

  UAE(United Arab Emirates, 아랍에미리트)로부터 막대한 액수의 원전건설사업을 따냈다는 소식으로 한동안 우리 사회가 시끌벅적했다. 수십조 원이 뚝딱 굴러들어온다고 착각한 것인지 묘하게 흥분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차분하게 정리를 해보자. 우선 UAE는 아라비아 반도 동쪽 연안의 7개 토후국(土侯國)이 연합해 생겨난 나라이다. 대통령이 연방을 대표하며 전체를 관장하고 각 토후국 수장들이 연방최고평의회를 구성해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그런데 토후국 가운데 유독 힘이 센 두 개의 도시국가 ‘아부다비’ 와 ‘두바이’ 는 다수결로 통과된 것도 무시해 버릴 거부권을 갖는다. 아부다비는 연방의 수도이고 두바이는 연방의 최대 도시이다. 알푸자이라, 라스알카이마, 아지만 등 다른 5개 도시의 이름은 들어보기 힘들고 두바이와 아부다비 2개 도시의 이름만 익숙한 것도 그런 연유이다.

 

정부가 직접 관장하는 프로젝트가 수익과 안전성에서 유리

  21세기 들어 중동 국가들의 공통된 고민이자 과제는 이른바 포스트 오일(POST-OIL)시대를 예비하는 것이다. 땅 밑의 석유가 고갈되고 미국과 유럽, 아시아의 강국들이 저탄소녹색경제를 통해 석유 의존도를 대폭 줄일 때 중동 산유국은 무엇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이것이 포스트 오일 시대의 중동이다. 더 이상 석유와 천연가스로는 국가를 꾸려나가기 벅차다는 현실인식이 포스트 오일 시대를 준비하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석유를 팔아 번 오일 달러를 국가펀드화 시켜 외국에 재투자해 오던 것을 최근 들어서는 국가 산업기반 건설에 돌려서 쏟아 붓고 있는 중이다.

  이번 원전건설도 그런 흐름 속에서의 대규모 프로젝트인 것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중동 붐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세계 곳곳에다 위탁투자한 중동국가들의 막대한 펀드기금이 마구 깎여 나가고, 거품이 꺼지면서 건설 붐이 중단되고 내수소비도 위축되고 있다. 그러자 중동국가와 기업들은 건설 사업을 취소하거나 중단하고 있다. 그러니 한국으로서는 위험도가 더 높은 민간 건설 프로젝트들보다 이번 원전 건설처럼 정부가 직접 관장하는 프로젝트를 공략하는 것이 수익과 안전성에서 유리하다.

  특히 경제 상황이 비교적 나은 나라들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UAE, 카타르, 바레인, 사우디 등이다. 카타르, 바레인도 지정학적으로 UAE에 속할 뻔한 나라이니 결국 정치적 싸움과 국제적 갈등이 비교적 적은 아라비아 반도 동쪽 나라들이 형편이 훨씬 좋음을 알 수 있다.

 

1003_bookreview_byeonsangwook_01우리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책

  그동안 중동과 관련되어 저술된 책들은 중동의 국제정치적 및 역사적 배경, 종교이념과 문화적 충돌에 대한 것들이 많다. 중동의 경제 부흥과 한국의 진출에 관한 저술들도 적잖게 있지만 21세기 중동의 포스트 오일 전략, 그리고 2008년 세계경제 침체 이후의 중동 상황을 반영한 책은 유감스럽게도 찾기가 쉽지 않다.

  《신중동아프리카 경제론》정도가 눈에 띄는데 그런 맥락에서 이 책 발간 직후 출판된《아부다비의 힘(The Power of ABUDHABI): 미래기업국가 경쟁력 벤치마킹 모델》은 단연 돋보이는 저작이다.

  저자는 광고와 문화콘텐츠, 마케팅 분야 전문가이자 중동통인데 UAE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와 UAE 가운데 유독 ‘두바이’ 에만 쏠렸던 우리의 착시를 수정해‘아부다비’로 돌려놓아야 하는 당위성을 세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부다비는 최근 석유소비를 최소화하는 ‘제로카본 글로벌 도시’ 로 도약하면서 동시에 ‘아랍문화의 독창적인 발전’ 을 대대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경제건설과 함께 문화와 관광을 동반발전시키려는 UAE의 큰 형님다운 전략이라 할 것이다. 저자는 여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아부다비의 변신을 조명하고 있다. 거기에 역사적 사실과 지형적 배경, 주요 사건들까지 챙겨가며 변화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진입하고 있는 ‘도시국가 아부다비’ 의 실체를 명쾌히 해부하고 있다.

  그동안 세계의 많은 경제학자들과 정부 관료들은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건설 붐을 이어가는 ‘두바이’ 를 칭송하면서 장미빛 환상을 심어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두바이를 놓고 경제의 안정성에 있어 우려할 부분이 있음을 지적해왔다.

  또한 문화적 기반이 너무 허약한 채로 기술공학적 도시건설에 의존한 발전이 과연 글로벌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있어왔다. 결국 2008년 말 미국발 경기침체가 세계로 번지면서 두바이 신화는 멈췄고 대신 기반과 안정성이 더 뛰어난 ‘아부다비’ 로 세계의 눈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아부다비가 UAE 원유 생산의 92%, 연방재정의 80%를 차지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UAE의 핵심은 단연 아부다비이다. 눈앞의 이익과 호사스러움 때문에 두바이에 시야가 묶여 온 것은 결국 우리의 어리석음이라 해야겠다. 이 책의 저자는 이미 일본 무역업체들이 수년 전부터 아부다비의 이티하드 항공 비행기를 뻔질나게 타고 다니며 아부다비 팰리스 호텔에 죽치고 앉아 아부다비 진출에 엄청난 공을 들여왔으니 우리로서는 꽤 뒤쳐진 셈인데 이제라도 아부다비의 비전과 약진하는 실상을 바로 알고 챙겨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의 충고를 두고 볼 때 이번 UAE 정부의 원전 프로젝트를 따낸 것은 아부다비 진출에 막강한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어서 무척 긍정적이다. 물론 원전 건설 사업에 약간의 과장과 환상, 오해가 있는 것은 냉정히 수정해야 한다. 두바이에 오버하다 아부다비를 놓친 것처럼 중동진출은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면밀하고 균형 잡힌 시각과 상황 변화를 읽는 뛰어난 감각이 필요하다.

 

<출판저널 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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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자유주의 이념을 제시한 역작

3월 28, 2010 by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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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한구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 학술

《급진자유주의 정치철학》

 

  이념사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자유주의는 근대 유럽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민주주의는 평등한 시민들이 함께 국정에 참여하는 정치체제를 지향하지만, 자유주의는 유산시민들의 정치사회적 권리에 대한 요구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자유주의는 중세적 봉건체제와 절대왕정을 타파하기 위해, 근대 유럽의 신흥 시민계급이 제창한 저항적 이념이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이 두 이념 간에는 화합하기 어려운 긴장이 존재하며, 때로는 이 긴장이 적대적 대립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뿌리가 다른 두 이념이 결합해서 성립한 수정 자유주의 내지는 수정 민주주의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1003_bookreview_leehangu_01자유주의를 둘러싼 여러 문제점들을 명쾌하게 해명

  최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실패는 자유주의에 대한 불신을 확대시켰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불신을 우려한다. 민주화가 내실을 갖추려면 자유주의의 바탕 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의《급진자유주의 정치철학》은 자유주의를 둘러싼 여러 문제점들을 명쾌하게 해명하면서 우리 시대, 우리 현실에 맞는 새로운 자유주의 이념을 제시한다. 학문적 내공이 온축된 역작이다. 이 책은 전체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충족시키고자 한다. 하나는 자유주의 담론의 보편성에 대한 탐구이며,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가 우리의 현실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의 모색이다.

  “《급진자유주의 정치철학》은 자유주의 담론의 보편성과 구체적 현실에 대한 탐구를 함께 겨냥한다. 그것은 보편사적인 자유주의의 의미를 이해한 토대 위에서 한국 자유주의의 이론과 실천 패러다임을 천착한다.” (5쪽)

  저자가 주장하는 ‘급진자유주의’ 란 어떤 유형의 자유주의인가? 서론격인 1장 ‘급진자유주의와 한국사회’ 에서 저자는 ‘급진자유주의’ 의 원리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논제로 규정한다.(50~56쪽)

1) 급진자유주의는 비판적 자유주의이다.
2) 급진자유주의는 진보적인 혁신 자유주의로서, 성찰적 개인주의를 시금석으로 삼는다.
3) 급진자유주의에서는 민주주의보다 자유주의가 더 선차적이다.

저자는 ‘급진’ 과 ‘비판적’ 을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즉, 이때의 ‘급진성’ 은 ‘비현실적으로 과격하거나 지나치게 성급한 시도’ 라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 ‘자신의 뿌리에 대한 근원적 성찰’ 을 의미한다. 비판은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이며, 사회에 대한 비판이며, 역사에 대한 비판이다.

  급진성에 대한 이런 규정들을 통해서 우리는 저자가 주장하는 급진자유주의가 지금까지 주장되어온 자유주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철저한 반성적 성찰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현실에 적합한 자유주의의 창조적 모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자유주의가 보수에 의해 왜곡, 진보에 의해 폄하

  저자는 한국 현대사에서 자유주의가 보수에 의해 왜곡되었으며, 진보에 의해 폄하되었다고 진단한다. “단적으로 해방 이후 지금까지 자유주의는 한편으로 보수 기득권 집단에 의해 오용되어왔고, 또 다른 한편으로 진보세력에 의해 멸시당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에 대한 이 같은 대응 방식은 둘 다 역사적 자유주의의 합리적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온 것이다.”(24쪽)

  보수 기득권집단이 이해한 자유주의는 자유방임 자유주의라고 저자는 해독한다. 이것은 소극적 자유개념에 의해 인도된 자유지상주의이다. 자유주의의 역사에서 보면 자유지상주의는 낡은 이념이다. 좌파 진보세력은 자유주의에 대한 맑스의 비판에 따라 자유주의를 부르주아의 계급독재를 관철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간주한다. 좌파진보세력의 오류의 근원은 헤겔의‘시민 사회론’을 맑스가 잘못 평가한 데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7장 ‘국가와 헌법의 정치철학-한반도 분단과 통일시대와 관련하여’는 이 책의 앞부분에서 논의한 정치철학적 논의를 한국 현대사 최대의 난제 중 하나인 분단과 통일의 과제와 접합시키는 작업으로 이 책의 백미를 이룬다. 저자는 대표적인 두 통일 담론인 국가수렴론과 분단체제론을 모두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여기서 저자는 227쪽에서 목적 없는 과정으로서의 통일론을 제시한다.

  “나는 ‘어떤 통일인가?’ 를 넘어 ‘왜 통일인가?’ 를 절절히 물어야하는 시점에 우리가 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장은 결국 통일보다 평화가 더 중요하며 비록 더디더라도 평화를 뿌리내리는 일이 오히려 통일의 첩경
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는 저자의 치열한 사유 때문이다.

  저자는 자유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섭렵과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의 현실에 알맞은 자유주의의 새로운 변용을 시도한다. 이러한 시도가 실제로 성공했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다루기 어려운 정치현실의 문제에 대담하게 도전하는 저자의 학문적 용기와 진지성은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모든 주장들이 충분히 소화되어 논의되었다는 점도 장점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쌓은 저자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내용적 측면에서도 저자의 급진자유주의는 많은 부분에서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평가된다. 그렇지만 자유주의에 대한 논의의 심화를 위해 필자는 다음과 갈은 질문을 던진다.

(1) 하이에크의 시장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는 양립 가능한 것인가? 하이에크의 시장주의는 불평등의 해결을 위한 어떠한 처방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진보적 자유주의는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혁신 자유주의는 이런 긴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

(2)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다루면서 민족주의를 배제할 수 있을까? 혁신 자유주의는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자유민주주의와 주체사회주의의 문제로만 다룬다. 그렇지만 남북의 관계가 한국과 일본이나 한국과 중국의 관계와 똑같다고 할 수 없는 한, 민족 통일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의 숙제가 아닐까?

 

<출판저널 2010-03>

(c)출판저널 문화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낙동강이 운다

글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 | 서평문화 – 환경∙과학

《생명의 강》

 

  지난해 연말 낙동강에 다녀왔다. 원래 목적은 몇 년 전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반대 운동을 전개했던 지율 스님 인터뷰였다. 스님이 굳이 낙동강을 따라서 같이 걸어야 인터뷰에 응한다고 해서, 온 종일 예정에 없던 도보 순례를 하게 되었다. 경상북도 상주군에서 안동시까지 낙동강 상류를 따라 걷는 여정이었다.

  강추위 속에서 스님과 함께 강변을 따라 걸으면서 어느새 인터뷰는 뒷전이 되었다. 낙동강 상류의 겨울 풍광이 정말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이 강변은 큰 인기를 끌었던 몇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였을 정도로 비경이었다. 이제 얼마 후면 이 비경은 영원히 드라마 속에서나 볼 수 있다. 낙동강 곳곳에 설치하는 보 탓에 수몰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환경을 담당해 온 기자치고는 자연 풍광에 무덤덤한 편이다. 그래서일까? 지구 곳곳의 비경을 영상, 사진에 담는 자연 다큐멘터리에 대한 요즘의 관심도 탐탁지 않다. 일상생활에서 온갖 쓰레기를 배출하면서, 그런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두는 모습이 일종의‘티 내기’로 보이기 때문이다“( 난 이렇게 환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 이번에 낙동강을 따라서 걸으면서 이런 생각이 더욱 더 굳어졌다. 살얼음이 언 강 곳곳에 터를 잡은(수달의 놀이터일 게 분명한) 모래톱,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지천 중 하나인 내성천의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 우리가 꼬박꼬박 낸 세금 탓에 이런 비경이 영원히 사라질 위기가 목전인 데도 모두가 이렇게 한가하니 말이다.

 

1003_bookreview_kangyangku_01그들이 댐을 철거하는 까닭

  아직 사람의 손때가 덜 탄 낙동강 외진 곳의 비경에 취해서 ‘지금 그대로 두자’ ,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아무리 대통령과 그 밑에서 장단을 맞추는 공무원의 진정성을 믿고 싶어도, 지금 진행 중인 강을 ‘파고’ 보를
쌓는’ 식의 사업이 시대의 흐름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답답한 것이다.

  《생명의 강》은 이런 답답함을 더욱 더 부추기는 책이다. 외국의 ‘전문가’ 가 쓰고 국내의 ‘전문가’ 가 옮긴 이 책은 이른바 ‘선진국’ 이 강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최근의 동향을 생생히 보여준다. 기가 막히게도, 한국에서 추진 중인 정책은 전 세계에서 추진 중인 그것과 정반대다. 외국에서 지금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은 물의 흐름을 복원하는 일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강을 파고 보를 쌓는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정답을 찾았다. “홍수기에는 많은 물이 흐르고 갈수기에는 바닥이 드러나는, 원래 물의 흐름이야말로 강을 둘러싼 온갖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해법이야!” 이런 깨달음을 얻은 덕분에, 그들은 지금 전 세계 강 60퍼센트의 흐름을 가로막는 온갖 장애물을 걷어내고 있다. 딱 한 나라의 예만 살펴보자. 미국은 지난 200년간 보를 쌓고 둑을 높여 강을 직선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왔다. 이 나라는 1970년대 20개, 1980년대 91개, 1990년대 177개(!)의 보(댐)를 철거했다.

 

같은 ‘삽질’ , 다른 ‘결과’

  ‘삽질’ 에는 일가견이 있었던 미국이 이렇게 변한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들이 특별히 사라진 강의 옛 모습에 애착이 있어서가 아니다. 보를 쌓고 둑을 높인 강은 죽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강을 살리고자 막대
한 돈을 쏟아 부었지만 밑 빠진 둑에 물 붓기였다. 그러나 보를 걷고 강의 흐름을 복원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강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계산 속 밝은 깍쟁이들이 확인해 봤더니, 이렇게 살아난 강은 수십 배의 비용을 절감했다. 살아난 강 곳곳에 생긴 습지도 헥타르 당 연간 2만 달러에 맞먹는 가치를 낳았다.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마을 노인의 옛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던 동물도 조심스럽게 살아난 강으로 돌아왔다. 강이 살아나는 모습에 환경운동 가만 미소 짓는 게 아니다. 입이 귀에 걸리는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강을 이 꼴로 만든‘토건족’이다. 이들은 이제 ‘복원’ 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선배가 수십 년 전 쌓은 보를 걷으며 한몫 크게 챙긴다. 강 살리기는 일감을 찾지 못해 몰락하던 토건족의 새로운‘블루오션’이다.

  몇 달 전에 만난 독일의 한 전문가도 귓속말로 똑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당신네 대통령은 바보야!” 그의 설명은 이렇다. 보를 쌓는 것보다 있는 댐을 걷어 애초의 강의 흐름을 복원하는 일이 토건업체 입장에서 훨씬 더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유착도 머리가 좋아야 한다니까!” 할 말 다해놓고 농담이라며 손사래를 치는 그의 웃음이 비수 같았다.

 

낙동강으로 가자

  《생명의 강》은 삽질에 집착했던 미국의 한 정치인의 얘기를 전한다. 보를 쌓고 둑을 높이는 데 앞장섰던 그는 한참 지나 이런 질문을 받았다. “지금은 댐 건설에 찬성합니까, 반대합니까?” 잠시 망설인 끝에 그가 한 대답이 걸작이다. “지금은 반대합니다. 댐을 세우면 잃을 게 너무 많아요!”

  그 정치인이 그런 후회를 한 지 벌써 10년도 더 되었다.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난 후 똑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지금 삽질에 집착하는 정치인은 무슨 답을 내놓을 것인가? 그리고 또, 그런 정치인의 행보를 보면서 손 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바로 당신은 뭐라고 답할 것인가? 훗날 후회하기 싫다면 이 책을 읽자. 그리고 이번 주말에는 가족의 손을 잡고 토요일 오전 10시까지 경상북도 상주터미널 앞에 가보자. 그 시각 그곳에는 지율 스님이 한 주도 빠짐없이 낙동강을 따라서 함께 걸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숨이 끊기기 직전 낙동강이 내는 가쁜 숨소리를 들어보자.

 

<출판저널 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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