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의 시대는 끝났는가!
글∙사진 문연주 아주대학교 세계학연구소 연구원 | 해외출판문화동향 – 일본
구텐베르크의 시대는 끝났는가!
도쿄국제도서전 최대 화두 ‘전자책’, 구글 등 해외전자출판기업 성황
전자출판 서비스, 전자책 단말기 전시 코너 인기
7월 8일, 제17회 도쿄국제도서전이 활기차게 문을 열었다. 아리아케의 도쿄빅사이트에서 나흘간 열린 이번 도서전에는 제14회 디지털 퍼블리싱 페어와 제1회 교육 IT솔루션 EXPO가 함께 개최되어 지난해에 비해 전시장 규모도 커졌을 뿐만 아니라, 참가사 수도 과거 최대인 세계 30개국 1,000개 사의 참여가 있었다. 방문객 수 역시 과거 최고였던 작년보다 35%나 증가하여 총 8만 7,449명이 발걸음을 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연일 전시회장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선 접수 데스크 앞의 넘쳐나는 인파만 보자면, 이러저러한 총체적 난관과 위기에도 불구하고 일본 출판업계가 지닌 기초체력의 건재함이 느껴졌다.
이번 도쿄국제도서전의 주빈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조금은 낯선 사우디아라비아의 사회와 역사, 그들의 출판과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장 중앙의 사우디아라비아 메인관 옆에는 널찍한 사우디풍천막이 설치되어 방문자들에게 문화교류와 체험의 장을 제공함과 동시에 마치 사막 한가운데에서 쉼터를 제공받은 듯한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서울국제도서전도 그러하지만, 최근 도쿄국제도서전 역시 저작권 거래나 출판문화 교류와 같은 국제적인 요소보다는 국내 출판계의 쟁점 논의와 독자 서비스 등 국내적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가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이번 도서전 역시 그러했다. 도서전에 자리한 각종 부스나 방문자들의 반응, 각종 전문가 세미나와 강좌에는 최근 일본 출판계를 읽을 수 있는 주요 이슈와 쟁점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전자책에 관심과 인기 집중
이번 도쿄국제도서전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전자출판이었다. 접수를 마치고 바로 시작되는 교재ㆍ교육콘텐츠 존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디지털 퍼블리싱 존의 관람객 밀집도는 전시장의 다른 어떤 곳보다도 남달랐다. 특히 전자출판에 관련된 서비스와 전자책 단말기 전시 코너에 인기가 집중되었다. 안드로이드가 탑재된 새로운 정보단말기를 내놓은 NEC와 컬러전자페이퍼를 채용한 단말기를 선보인 후지츠 등의 부스에는 각종 독서전용 단말기를 실제로 만져보고 그 조작성을 확인해보려는 사람들로 혼잡을 이루었다. 올해 처음으로 등장한 전자책 단말기 존에는 이러한 일본 국내 생산자 이외에도 미국, 중국 등 해외 기업을 포함하여 40개사 이상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한편 전자출판 코너에서 각별히 눈에 띈 것은 구글이었다. 지난해 일명 구글소송문제로 일본 출판계를 발칵 뒤집었던 바로 그 구글이다. 구글 부스에서는 매 30분마다 구글이 자체적으로 전자화한 서적을 온라인 상으로 판매하는 ‘구글 에디션’에 대한 설명회가 개최되었는데, 빠르면 내년 초 일본에서도 본격화될 구글의 비즈니스 모델에 관심을 가진 인파로 설 자리조차 확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또한 많은 이목을 집중시킨 부스 중 하나는 보이저와 세르시스의 부스였다. 1992년에 창립된 보이저는 전자출판물의 뷰어소프트를 제공하고 온라인서점인‘이상서점’을 통해 전자출판물을 판매하는 가히 일본 전자출판의 파이오니아라 할 수 회사이다.
대표를 맡고 있는 하기노 마사아키씨는 근래 일본 전자출판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맹활약 중이다. 그러한 보이저와 그 파트너 세르시스가 마련한 총 열한 개 테마의 전자출판 관련 이벤트에는 전자출판에 관한 그들의 오랜 경험과 고민이 녹아들어 있는 만큼 모든 테마가 주목을 끌었으며 매 강연, 매 좌담회마다 몰려든 인파로 통로까지 가득 메워져 장소를 정리하는 스태프들의 땀을 쏙 빼곤 했다.
숨 가쁘게 변화하는 전자출판 시장
일본 출판업계에서 본격적으로 전자책 붐이 붙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만 해도 전자출판시장에서는 휴대폰 만화시장이 독주하고 있던 상태로,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광고수익과 판매수익 모두에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잡지시장이 새로운 돌파구로써 잡지의 디지털화를 점진적으로 시도해오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던 가운데 작년 한해 일본을 강타한 구글소송문제를 계기로 전자책에 대한 논의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구글 소송은 구글 측이 일본의 콘텐츠를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해프닝으로 일단락되었으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의 콘텐츠가 미국에서 디지털화되어 판매될 뻔 했다고 하는 사실은 일본출판계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구글소송 이후 일본에서는 국립국회도서관이 추진하고 있는 전자도서관 구상(일본 국내 서적의 전자화)이 주목을 받고 있으며, 올 3월에는 총무성, 문부과학성, 경제산업성이 ‘디지털 네트워크 사회의 출판물 이용 추진에 관한 간담회’를 발족하여 지난 6월에 보고서를 통해 전자출판의 과제 등이 정리, 발표되기도 했다. 이에 더하여 2007년에 미국에서 발매된 아마존의 킨들이 작년 10월부터 일본에서 판매가 시작되고,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열풍이 가세하면서 2004년 리브리에(소니)와 시그마북(마츠시타전기)의 실패 이후 잠잠하던 전자책 단말기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오르고 있다.
전자책 붐은 출판계의 도약을 위한 도전과 기대를 안겨주는 한편, 종이출판을 기반으로 구축된 출판산업 구조에 위기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는 현재 모든 출판인들의 최대 고민이며 과제일 것이다.
일본의 출판사와 서점을 이어온 대형도매유통회사인 토한은 전자책 비즈니스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여 중소출판사의 콘텐츠 디지털화를 지원하고 서점 내에 전자책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장치를 도입하겠다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으며, 대형인쇄회사인 다이니혼인쇄 역시 올 10월에 약 10만 종을 갖춘 전자서점을 개설함과 동시에 출판사에 전자책을 제작, 송신을 지원하는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라 발표했다.
이처럼 지난해부터 올해에 걸쳐 전자출판을 둘러싼 변화의 물살이 거세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일본 출판인에게조차 낯설고 파악하기 어려운 지경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번 도서전에 마련된 전문 세미나 중에는 ‘출판 디지털화의 흐름을 재정리한다- 쿠로후네를 두려워하지 않기 위한 기초교양’처럼 전자출판산업의 현황을 정리해주는 세미나도 마련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출판의 최종 승부의 가름길은 콘텐츠의 충실화
올해 2010년을 일본에서는 “전자서적 원년”이라 부르고 있다. 킨들과 아이패드 등 전자책 열람기능을 탑재한 휴대단말기의 폭발적인 보급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출판 불황을 타개할 기폭제로 기대되고 있으며, 앞으로 5년 후면 일본의 전자서적시장이 2천억엔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제시되고 있는 만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고자하는 이들의 열기가 이번 도서전을 예년과는 사뭇 다른 신열로 들뜨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출판인이 이러한 전자출판 붐에 침착함을 잃은 것은 결코 아닌 듯 보였다. 출판 불황의 위기감에 빠져든 2001년에《누가 책을 죽이는가》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논픽션 작가 사노 신이치씨는 이번 도서전의 개최 첫 날, 출판관계자 대상의 기조강연에 섰다. 그의 강연 테마는 “구텐베르크의 시대는 끝났는가”이다. 사노 씨는 최근 전자책 붐에 대해 좀 더 냉정해질 것을 주문했다. 문제의 본질은‘종이’나‘전자’와 같은 전달수단이 아니다. 정보와 지식, 감동 그러한 것들을 하나로 엮은 콘텐츠의 질을 높이는 것이 기본이라며 출판인들을 독려하는 그의 강연에 약 1,500명 이상의 참가자가 숙연히 귀를 기울였다고 <아사히신문>은 보도했다.
<출판저널 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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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에 반기를 든 미셀 옹프레
글∙사진 최경란 주불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 프랑스통신원 | 해외출판문화동향 – 프랑스
프로이트에 반기를 든 미셀옹프레
지난 4월 21일 서점의 진열대에 오른 후 지금까지도 열띤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문제의 책은 프랑스 현대 철학자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가 그라세 출판사에서 펴낸《우상의 황혼: 프로이트의 허황》이라는 제목의 6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저서로,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프로이트 신화의 허구를 해부하여 폭로한다. 출판 이후 토론의 열기가 여전히 가시지 않아서 언론지를 통한 격노한 공개서신으로부터 수많은인터넷 블로그까지 들썩거리는 실정이다. 5월에는 TV 토크쇼에도 자주 초대되어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들의 말씨름을 들어보면 각자 너무나 잘나고 너무나도 할 말이 많은 프랑스인들의 수다스러운 언쟁이 보통 재미난 게 아니다.
먼저 잔잔한 호수에 조약돌을 던져 넣은 저자 미셀 옹프레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1959년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지방에서 노동자 부모 아래 태어난 그는 27세에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2002년까지 고등학교에서 철학 교사로 교편을 잡았다. 교육성의 보수적인 교육방침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터에 2002년 대선에서 극우파 후보인 르펜이 최종선거에 오르게 되자 그 해에 교직을 사임하고 캉(Caen) 민중대학을 창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1989년 이후로 40여 편이 넘는 저서를 발표하는 등 왕성한 저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의 철학사 강의는 국영라디오를 통해서 정기적으로 방송되고 있다.
니체, 라메트리 그리고 키레네 학파의 아리스티토포스의 영향을 받은 옹프레의 철학적 성향은 물질주의, 향락주의, 무신론으로 요약된다. 특히 2005년에 출판한《무신론 논고》는 30만 부 이상 팔리면서 각계의 큰 반향을 일으킨 전적이 있다. 종교 특히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유일신 종교를 맹렬하게 공격한 후 이제 옹프레는《우상의 황혼》을 통해 정신분석의 아버지 프로이트의 공격에 나섰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은 새로운 종교이자
엄청난 집단적 광기에 불과하다
이 책의 제목《우상의 황혼》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저서《우상의 황혼》과 동일하다. 옹프레는 이 책을 통해서 니체 철학에 근거하여 프로이트를 재조명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니체는 ‘철학자 없이는 철학이 없으며 철학자의 개인적 일생 없이는 철학자도 없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신분석의 대대적인 행보는 먼저 개인적 일생의 대대적 행보에서 나온 것임을 밝히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스스로 오디푸스 콤플렉스에 강박되어 있던 프로이트는 아버지라는 개념이 신의 개념과 동일시되는 종교적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무신론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신앙을 가지면서도 하나의 규범적인 종교를 가지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신이라는 개념 없이도 하나의 종교를 만들 수 있는데 이 두 번째 경우가 프로이트의 경우와 근접한다는 설명이다. 이때 종교란 유일신의 개념을 초월하여 현 세상에 하나의 의미를 주는 저세상을 말하는데 딱히 잡아낼 수 없고, 가변적이며, 명료하게 규정할 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가 프로이트에게는 기가 막힌 저세상이 되어주었다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은 새로운 종교이자 엄청난 집단적 광기에 불과하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종교’가 어떻게 그 많은 성공을 누릴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옹프레는 유대교나 기독교의 전통 속에서 20세기 동안 억압되고 침묵 속에서 일관되어 왔던 성(性)을 그의 이론의 중심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정신분석이론 신앙처럼 자리잡고 있어
프로이트를 내려 깎는다고 해서 왜 이렇게 소란스럽게 물의가 발생하는가를 이해하려면 프랑스 내에서 정신분석이론이 누리는 위상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19세기 말 비엔나의 상류사회를 무대로 시작된 정신분석은 20세기 초반부터 1970년대까지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프랑스와 아르헨티나 정도에서 정통한 맥이 이어지고 있다. 왜 이 두 나라인가를 분석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
여하간 프랑스에서는 1900년《꿈의 해석》이 번역되면서 프로이트의 이론이 서서히 소개되었다. 이차대전 발발 이전까지는 비교적 일부 부르주아 계층에서 조금씩 전파되었고, 대전 중에는 프로이트가 유대인이라는 점 때문에 정신분석도 덩달아 박해를 받지만 전후에는 특히 자크 라캉의 등장과 함께 프랑스에서 독자적으로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어서 지금까지도 일부 프랑스 지성인들 사이에서 거의 숭배의 대상으로 건제하는 분야이다.
실제로 숭배라는 단어는 절대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오늘날 프랑스의 정신분석은 마치 하나의 종교와도 같아서 마치 입문한 자들만이 유일하게 진리를 쥐고 있다는 믿음과 함께 외부의 비판이나 지적(예컨대 오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것은 동양의 문화와 전통에는 먹히지 않는다 라거나, 페니스가 없다는 이유로 여성을 남성의 하위 인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가 라거나, 모든 것이 성에서 출발한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가 아니냐 등)에 대해서는 짐짓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그건 당신의 무의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치부해버리는 형편이다. 대부분 지성인 계층에 속하는 일부에서 이렇듯 절대적 신앙처럼 자리잡은 정신분석이론을 옹프레가 대놓고 공격하고 나오니 반대진영이 불같은 반격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프로이트는 ‘치유’를 한 것이 아니라 ‘구원’을 했을 뿐
미셀 옹프레의 프로이트 비판 내용을 극단적으로 간략하게 살펴보면 먼저 프로이트의 개인적 일생의 측면을 들 수 있다. 즉 강박관념으로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프로이트 자신의 정신적 질병을 가지고 오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이론을 삼아 전파했으며 탐욕과 잔인성, 욕구와 증오 등 자신의 내적 감정에 따라 움직인 사기꾼으로 부와 명예, 영광과 세계적 명성을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일을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그의 여성편력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며 그가 다룬 환자들은 당시 비엔나 사회의 부르주아 계층으로, 의사인 프로이트 박사가 요구한 진료비는 가난한 사람들이 절대 근접할 수 없는 엄청난 고가였다.
둘째, 정신분석의 치료효과 측면에서 옹프레는 프로이트가 “플라시보 효과의 한계 내에서만 치료하였다”라고 주장한다. ‘플라시보 효과’란 약의 내적 효과가 전혀 없거나 아주 희박한 처방을 사용하는 치료방식으로 말하자면 의사가 다녀간 것만으로 병이 낫는 것 같은 효과를 말한다. 프로이트는 도라, 어린 한스, 늑대인간 등 다섯 건의 정신분석 치료내용을 남겼고 자신이 이들의 병을 모두 치유하였다고 단언하였다. 그러나 옹프레에 따르면 이들의 실제 삶을 보면 절대로 ‘치유’된 것이 아니며 정신분석은 그들을 ‘구원’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구원’은 무당의 주술이나 원시사회의 치료사들 혹은 자기파를 이용한 치료사들의 치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세 번째로는 정치적인 요인을 들고 있다. 즉, 누군가 정신분석에 대한 역사비판적인 의견을 들고 나오는 순간 당하게 되는 비판은 ‘수구주의자’ ‘반유대주의자’ ‘극우파’라는 딱지이다. 실상 반유대주의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민감한 것은 프랑스 사회의 특질 가운데 하나이다. ‘유대인이 뭐라고 헛소리를 하던 절대로그를 비판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는 유대인이기 때문이다’라는 식의 암암리의 사회적 논거가 있다.
옹프레는 자신은 프로이트의 저서를 읽고 연구하고 비판하지만 프로이트의 추종자들은 그들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글을 읽지 않으며 단지 교리문답을 수호하는 데에 만족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치적, 종교적, 혹은 인종적 범주를 넘어선 객관적인 역사비판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출판저널 2010-06>
(c)출판저널 문화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Q84》3권 300만 부 돌파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기의 힘
글∙사진 문연주 아주대학교 세계학연구소 연구원 | 해외출판문화동향 – 일본
《1Q84》3권 300만 부 돌파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기의 힘
한번 손에 들면 더는 읽기를 멈출 수 없다. 당신은 현실세계의 ‘시공’(時空)을 잊고, 오매불망 기다렸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로운 이야기 세계에 몰입한다. “하루키적(的)”이라고 밖에는 형용할 길이 없는 매력적인 비유들. 각각의 표현들의 적확함과 그 울림,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의 연결을 포함하여, 그 어떤 세부도 허술함이 없는, 철저하게 고민해내고 다듬어낸 음악적 문장. 페이지를 넘기며 누군가 영혼의 문을 똑똑 두드리는 것을 느낄 터이다. 문이 열린다. 마음의 안쪽인지 바깥쪽인지 알 수 없는 그곳에는 당신의 것이며, 또한 다른 누군가의 것이기도 한 광경이 펼쳐져 있다. 그야말로 친밀하면서 동시에 어딘가 멀리 있는 보편적인 풍경과 만나는 것 내지는 그것을 떠올리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오노 마사츠그(小野正嗣),〈요미우리신문〉서평, 2009년 6월 8일자).
작년 6월, 장장 7년의 기다림에 종지부를 찍고 드디어 독자와 만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이하 하루키. 존칭 생략함)의 신작 장편소설《1Q84》1, 2권은 가히 폭발적인 기세로 일본 전역에 퍼져나갔다. 각 권 24장으로 구성된《1Q84》의 홀수 장에는 스포츠클럽에서 일하는 동시에 킬러이기도 한 여주인공 아오마메의 이야기가, 짝수 장에는 소설가를 지망하는 학원 선생인 남주인공 덴고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상처 받은 어린 영혼, 가정폭력과 성적학대, 여주인공이 일으키는 연속 살인, 컬트교단에서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행위, 그리고 정체불명의 미소녀 후카에리와 그녀가 쓴 불가사이한 소설《공기번데기》등 서스펜스와 판타지, 사랑 이야기와 같은 여러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도무지 한 두 마디로는 간단히 요약하기 어려운 하루키의 이야기는 강한 흡인력으로 독자를 사로잡았다.《1Q84》1, 2권은 발매 이후 5주 연속 서적 종합부문 1, 2위를 독점하고, 2009년 연간 랭킹에서도 각각 1위와 3위를 차지했으며, 작년 말에는 더블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세계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하루키
하루키의 특이사항 중 하나는 그의 작품이 늘 젊은 세대 독자를 매혹시키고 새롭게 영입해 나간다고 하는 점이다. 보통 작가는 자신의 독자와 함께 작품을 통해 세월을 쌓아나간다고 말해지지만 하루키는 다르다. 그는 자신의 고정팬과 더불어 늘 젊은 세대의 추종을 받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소설의 주인공이 대체로 감수성 예민한 젊은 세대로, 당시대의 포퓰러 문화를 개성적으로 세련되게 향유하는 청춘이라는 점도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그의 소설에 접하는 우리 독자들은 실제로 환갑을 맞이한 하루키를 좀처럼 이미지하기 어려울 정도다. 또한 그의 소설의 주인공은 대체로 자신을 둘러싼 시대와 사회에 무관심하지는 않지만 애써 그와 대면하지는 않는 사회와의 관련성이 매우 희박한, 그러나 진지하게 자신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젊은이들이다. 또 하나의 새로운 청춘문학이라는 점에서 보자면《1Q84》도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무언가 변한 하루키를 느끼게 한다. 혹자는《1Q84》에 새로운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고도 평가했다.
그의 변화를 감지하게 하는 포인트 중 하나는 그가 컬트교단이나 성폭력과 같은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1989년에 데뷔 이후 마치 그가 그린 대부분의 주인공처럼 사회와의 거리두기를 유지해온 그가 작품을 통해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또한 이제껏 자신이 나서 사회적 발언을 하는 일이 거의 없었던 그가, 작년 2월 이스라엘의 중심에 서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침공을 감행한 이스라엘을 비판했던 감동의 예루살렘상 수상 스피치 ‘달걀과 벽’은 이미 너무나도 유명하다.
독자는《1Q84》라는 소설 발행에 즈음하여 소설 안에서도 그리고 소설 밖에서도 세계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하루키를 느낄 수 있었다. 하루키는 <요리우리 신문>과의 인터뷰(2009년 6월 16일자)에서도 자신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시스템에 저항하는 소설의 역할
그가 밝힌《1Q84》집필의 직접적인 계기는 1995년에 도쿄에서 발생한 ‘지하철 사린사건’이라고 한다. 이 사건은 컬트신흥종교단체인 옴진리교가 지하철에 화학병기로 사용되는 사린가스를 살포한 무차별 테러사건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해외에 거주하던 하루키는 이 사건을 접하고 귀국을 결정했다. 그리고 일본사회에 대한 자신의 세대의 역할, 그리고 작가로서의 책임을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이 소설에 앞서 지하철 사린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60명 이상의 피해자를 인터뷰하여 정리한 논픽션《언더그라운드》와 옴진리교 신자 여덟 명의 인터뷰를 실은《약속 받은 장소에서》를 발표했다.
특히 옴진리교 사건에서 여덟 명이나 살해하는 중죄를 범한 한 청년에 관심을 가졌다고 하는 그는, 평범했던 한 인물이 그런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자신이 사형수가 되어있는 상황(그는 이를 “달의 뒷면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공포”라 표현했다)이 지닌 고립감과 공포함에 대한 오랜 동안의 생각이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개인의 주체성을 빼앗아 버리는 집단의 힘(그는 이를 시스템이라 칭한다)은 단순히 컬트집단이나 특정 조직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 모든 곳에 존재하며, 그러한 시스템에 대항하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가는 것, 사회에 존재하는 원리주의나 특정한 신화성에 대항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 개인이 지닌 영혼의 존엄함을 기억하고 그에 빛을 비추는 것이 소설을 쓰는 자의 책임이라고 그는 말한다.
하루키의 새로운 전환을 엿볼 수 있는 소설《1Q84》1, 2권은 독자들을 풀리지 않는 의문투성이의 세계로 밀어 넣었다. 아오마메와 덴고가 현실의 1984년과는 살짝 어긋난 1Q84년에 빠져든 것처럼, 2009년에 1, 2권을 접한 독자들은 실제 현실과는 다른 200Q년 속에 빠져 하루키가 던진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상상의 나래를 이제껏 펼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동시에 독자들은 열렬하게 속편을 기대했다. 그리고 그런 독자들에게 답을 줄 속편이 드디어 발매되었다.
《1Q84》3권 300만 부 돌파
독자들을《1Q84》의 늪에 밀어 넣은 하루키의 속편 3권은 예정보다 서둘러 지난 4월 16일에 발매되었다. 발매일, 도쿄의 시부야<츠타야>나 <아오야마북센터> 롯폰기점 등 철야영업을 하는 일부 서점에는 자정부터 가장 먼저 책을 구입하고자 하는 팬들이 줄을 이었다. 3권은 초판 50만 부를 발행했으나, 발매 전에 이미 20만부 증쇄가 결정되었다. 발매 3일 만에 39만 8천 부가 판매되어 단숨에 서적 종합부문 판매부수 1위로 부상했다. 발매 2주 만에 누계 판매부수 48만 5천 부를 돌파, 단 3주 만에 57만 2천 부를 판매, 50만 부를 돌파했다. 3권이 발매되기 전, 각각 87위와 161위로 내려 앉아 있던 1권과 2권은 3권의 발매와 동시에 각각 3위와 8위로 껑충 뛰어 올라 10위권에 진입했다.
그리고 지난 5월 13일《1Q84》시리즈 3권의 총 판매부수가 300만 부를 돌파했다(오리콘 북 랭킹 발표. 1권 134만 6천 부, 2권 107만 7천 부, 3권 62만 6천 부, 시리즈 총 판매부수 304만 9천 부). 시리즈 서적에 의한 총 판매부수가 300만 부를 돌파한 것은《B형 자기설명서》등 혈액형별〈자기설명서〉시리즈가 2008년 9월 15일에 기록을 세운 이래로 1년 8개월 만의 쾌거이다.
이번 3권의 책의 타이틀에서 ‘Q’는 라벤다, 띠지는 로즈핑크의 아름다운 색으로 치장되었다. 종이 두께와 질감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정성들여 제작된《1Q84》3권이 과연 독자들의 궁금증을 말끔히 씻어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벌써부터 일본에서는《1Q84》4권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출판저널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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