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아닌 가슴을 울리는 콘텐츠의 매혹

글 박기수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 베스트셀러의 사회학

머리가 아닌 가슴을 울리는 콘텐츠의 매혹

EBS <지식채널e>와 <다큐프라임> 시리즈 등
비슷비슷한 콘셉트에 지친 대중, 솔직담백한 다큐멘터리 지지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시대다.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story)가 아니라 어떻게 이야기하고(tell) 즐기게 할 것이냐(ing)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 말이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 를 훼손시켜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이야기의 내용만큼이나 ‘어떻게 이야기 하고 어떻게 즐기게 할 것이냐’ 도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비슷비슷한 콘셉트에 지친 대중, 솔직담백한 다큐멘터리 인기

  <북극의 눈물> <한반도의 공룡> <누들로드> <차마고도> <아마존의 눈물> 등 특별 기획 다큐멘터리는 물론 <다큐멘터리 3일> <인간극장>과 같은 정기적인 다큐멘터리까지 가히 다큐멘터리의 폭주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대중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지상파뿐만 아니라 케이블에 위성까지 다수 채널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채널별로 차별화된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고 저렴한 비용을 투자해서 보다 광범위한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로 경사되고 있는 실정에서 솔직담백한 다큐멘터리의 진지한 행보에 매혹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세계적인 고품격 다큐멘터리를 체험함으로써 리터러시 능력은 물론 기대수준까지 한껏 높아져 있고, 개인의 관심과 취향에 따라 전문 분야에 대한 깊이있는 접근이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지지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무엇보다 지배적인 채널에서 고만고만한 콘셉트에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출연자 그리고 공허하기만한 말장난과 불쾌할 정도의 막말이 난무하는 오락 프로그램과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막장 드라마 그리고 10대들의 전유물이 된 가요 프로그램 등으로의 편향이 최근 다큐멘터리 붐으로 이어지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

 

원소스 멀티유스의 성공적 사례, <지식e>와 <다큐프라임>

  이와 같은 다큐멘터리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알고 싶으나 알려주지 않던 진실이나 차가운 이성 중심의 지식이 아니라 감성으로 읽어낼 수 있는 지금 이곳의 진실에 대한 뼈아픈 성찰을 다루고 있는 EBS의 <지식e>와 <다큐프라임>이다.

  특히 이 프로그램들은 책으로 다시 출간되어 방송만큼이나 인기를 끌고 있다. 문화콘텐츠 업계에서 소위 말하는 원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 Use)의 성공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구현 가능한 만화나 소설 등의 도서류가 원천콘텐츠로 먼저 출시되어 시장성 검증을 받으면, 그 결과를 보고 매스 미디어와 결합한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같은 거점콘텐츠로 전환하는 것이 원소스 멀티유스 중 장르전환의 예인데, 이들의 경우는 프로그램이 계속 방송되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노출이 가능하고, 이미 방송을 통해 관심을 끈 아이템에 대하여 문자를 통한 말하기로 보완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냈다는 점에서 이러한 전개가 가능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효율적 이야기 전달을 위해 탄생한 내러티브

  스토리텔링 전문가들은 스토리가 내러티브를 낳고, 내러티브가 스토리텔링으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스토리는 구술 언어를 중심으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일정한 콘텍스트를 확보한 상황에서 전달되는 내용중심의 이야기를 말한다.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듣던 이야기를 기억해보자. 밑도 끝도 없이 ‘옛날 옛날에’라는 관용구로 시작할 수 있고, 이야기를 듣던 여러분이 잠들면 언제든 끝낼 수 있었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가 가장 대표적인 스토리의 유형 중 하나이다.

  이러한 스토리가 문자언어의 발명과 인쇄술의 발달로 익명의 다수 대중들을 향하는 도서의 형태로 바뀌면서 말하는 이와 듣는이 사이의 콘텍스트를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에 보다 정확하고 효율적인 이야기 방식이 필요했고, 그 결과로 등장한 것이 내러티브다.

  정해진 분량 안에서 익명의 다수 대중을 향해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략의 고안과 활용이 필수적이었다. 더구나 문자라는 매우 제한된 표현방식으로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이야기는 더욱 정교하고 전략화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스토리와 내러티브가 디지털 문화 환경과 결합함으로써 보다 창조적인 형태의 이야기로 전개된 것이 스토리텔링이다. 쌍방향성, 네트워크성, 통합성이라는 디지털의 특성을 창조적으로 수납함으로써 새로운 단계의 이야기를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을 단선적인 발전의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야기의 내용이나 기대하는 효과에 따라서 이 세 형태는 전략적으로 선택되어 활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방송의 장점과 책의 장점 활용한 <지식e>

  <지식e>가 방송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도서로서도 전폭적인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는 현상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은 정해진 시간에 다양한 감각에 호소할 수 있는 요소들을 통합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멀티미디어적 구현이 가장 효과적인 말하기 방식이라고 이야기하기는 곤란하다. 말하려는 내용과 목적 그리고 기대하는바에 따라서 그것은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방송 시간의 제한은 정보 제공 시간의 제한을 가져온다는 치명적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더구나 그것이 다큐멘터리라고 한다면 그 한계는 더욱 크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e>의 경우에는 멀티미디어적 요소를 지극히 제한적으로 활용하면서 지배소의 선택을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짧은 시간에 강한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정보를 엄격하게 선별하고 이를 완과 급을 조절함으로써 향유자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이 과정에서 상술되어야했거나 더 생각해볼 거리를 보완하고 있다. 모든 것을 말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생각해볼 거리에 초점을 맞추어 취사선택하고, 방송을 통해 최적화시킬 수 있는 요소와 책을 통해 최적화시킬 수 있는 요소를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방송만 보았거나 책만 보았다는 것이 온전한 체험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독립적인 스토리텔링을 즐긴 것이 된다. 물론 둘 다 보았다면 그 가슴울림은 두 배가 되었겠지만.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지식

  <지식e>의 스토리텔링은 매혹적이다. 그 압도적 매혹의 가장 중심에는 그것이 <지식e>의 콘셉트처럼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지식’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아닌 가슴을 울릴 수 있는 지식에 대한 목마름, 박제가 되어버린 다른 세계의 지식이 아니라 ‘지금 이 곳’의 아픔과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지식에 대한 갈망이 <지식e>에는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지혜라고 해도 좋을 내용을 <지식e>가 굳이 지식이라고 하는 이유도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죽어버린 지식들에 대한 무서운 질책이며 무거운 진혼에 다름 아니다. 지금 이곳의 우리가 그것에 열광하는 이유는 누구나 알고 있거나 안다고 믿고 있지만 나서서 드러내기 어려운 우리의 부끄러움을 그것이 가슴으로 되묻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당신들의 천국》이 읽히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라던 고(故) 이청준 선생의 선지적 서문이 기억나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일 것이다.

 

박기수
한양대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애니메이션 서사의 특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문학평론과 문화평론을 하고 있다. 현재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심위위원, 한국문화
콘텐츠진흥원 기획창작아카데미 자문위원,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 편집위원, 한국애니메이션학회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판저널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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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에 대한 헌법재판소 합헌결정의 부당성

5월 3, 2010 by admin  
Filed under 쟁점과 저술, 책과 담론

글 허일태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쟁점과 저술 – 헌법재판소의 사형제 합헌 결정

사형제에 대한 헌법재판소 합헌결정의 부당성

국민의 복수감정과 공익적 차원으로 사형제 존치, 시대착오적

 

  헌법재판소의 결정수준은 그 나라의 법률문화수준에 일치한다고 믿는다면, 우리나라의 법률문화 수준이 참으로 유치하고, 미숙하다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법률해석을 할 때, 예외는 엄격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것도 법과대학 1학년생이면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이런 초보적 상식조차 우리 헌법재판소는 짓밟아버렸다. 왜냐하면 헌법은 핵심적 조항과 지엽적 조항을 모두 품고 있으며, 핵심은 지엽에 우선됨이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핵심에 해당되는 조문을 전적으로 무시한 채, 헌법재판소는 지엽적이고 예외적인 조문을 핵심보다 중시하여 전면으로 등장시켜 이론구성을 했으며, 또한 법해석을 할 때, 원칙에 철저하고 예외적 해석은 엄격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예외를 원칙으로 둔갑시켜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사형제, 비상시 예외적 상황에 허용하도록 한 것

  즉, 우리 헌법 제10조는 인간존엄의 불가침을, 제37조 제2항 후단은 기본권의 본질적 침해금지를 명시하고 있는 바, 이들 규정은 우리 헌법의 핵심적 내용이다. 이들 핵심조문이 의미하는 바는 인간의 기본권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 부분은 생명이며, 국가는 이에 대한 불가침을 확인하고, 생명에 대한 본질적 침해의 불가를 천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헌법 제110조 4항 단서가 예정하고 있는 사형은 전시와 같은 비상사태라는 예외적인 경우에 혹시라도 실정법에서 사형이 형벌로 규정되어 있고, 사형을 선고해야 할 경우라도 결코 단심으로 하지 말고, 삼심으로 하여 신중하게 생명권을 보호하라는 취지일 뿐이다. 따라서 이 규정은 사형제를 정당화하는 내용이 아니고, 절차법 상으로 사형의 선고는 신중히 하라는 내용에 불과하고 사형제가 실정법에 없으면 아무런 쓸모없는 규정일 뿐이다.

  가사 백보를 양보하여 이것이 사형제를 허용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비상사태와 같은 예외적인 사정인 경우의 군형법에 국한된 것이고, 평화시대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해석되어야 한다.

  만일 이렇게 해석하지 아니하면 지엽적이고 절차적인 헌법 제110조 제4항 단서규정이 근본규범인 헌법 제10조와 제37조 제2항에 우선해서 적용해야 한다는 해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헌법재판소는 부끄럽게도 바로 이런 식의 헌법해석을 하였다.

 

 

생명권의 박탈, 헌법 정신에 반한 규정

  사형제 존치론자들은 말한다.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선진 국가에서는 사형제가 존치한다고. 그러나 이들 국가의 헌법은 잔인한 형벌금지를 명시하고 있을 뿐인데 반해, 우리 헌법은 인간존엄의 불가침을 선언하고, 과잉금지원칙과 함께 본질적침해금지규정까지 두고 있다. 따라서 일본이나 미국 헌법은 사형방법을 잔인하지 않게 하거나 반인도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괜찮다는 사고방식이 널리 퍼져있음에 반해, 우리 헌법상 생명권의 박탈은 헌법규정과 정신에 반하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신체의 자유권을 인정하고 그 본질적 권리인 신체의 절단을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아무리 악질적인 강도범이라고 하더라도 강도범의 팔을 자르는 절단형을 우리나라 법률은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이의 허용은 헌법상 보장된 인간의 존엄에 대한 불가침과 함께 기본권의 본질적 침해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체의 자유를 살펴보면, 신체 그 자체와 신체에 정신이 깃들어져야 비로소 신체의 자유를 가진 것이지, 정신이 없는 신체는 시체에 불과하며, 신체의 자유는 결과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전제로 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체의 절단형이 그렇게 잔인하고 인간존엄의 본질적 침해라면, 사람의 생명박탈은 그 이상이지 결코 그 이하일 수 없다.

 

국가 권위로 명령 하면서 사형제 허용은 모순

  우리 헌법의 계수역사(繼受歷史)를 조금만 참조해도 헌법 제37조 제2항 후단의 규정을 둔 이유가 사형제의 폐지를 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고 명시하고 있는 이 헌법규정은 제헌헌법에 존재하지 않다가 1960년 5월의 제3차 개헌에 의해 비로소 도입되었다. 이 규정의 계수배경은 이승만 정권에 의해 사법살인을 당한 조봉암 사건을 경험했던 4ㆍ19 혁명세력에 의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사법살인을 막기 위해 사형제를 폐지하고자 하는 취지에서였다.

  독일 기본법 제19조 제2항은 ‘기본권의 본질적 침해금지’ 를 두면서 사형제를 폐지하였고, 우리나라는 독일의 이 조문을 계수하여 사형제를 철폐하기 위해 당시의 헌법 제28조 제2항 후단(현행 제37조 제2항 후단)에 명시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제3차 개헌헌법이 있었던 다음해에 5ㆍ16 군사쿠데타가 발생함으로써 사형제가 청산되지 못하였다.

  더욱이 국가는 윤리적 존재이다. 국가는 결코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칠 수 없다. 만일 국가 스스로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친다면 국민들의 준법정신은 파괴되고 사회는 혼란스러워져 국가존립을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권위를 갖고 “절도하지 말라” “강도하지 말라” “사기하지 말라” “사람을 죽이지 말라” 고 정언명령을 내리고, 이에 위반하면 시민이든 공무원이든 형벌을 가한다. 그리고 국가 스스로 절도나 강도, 사기 또는 횡령을 삼가야 됨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자신이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사람을 의도적으로 죽이는 사형제도의 허용은 그 자체 모순이다.

 

사형제도, 강력범죄 예방효과 입증 안돼

  혹자는 말한다. 사형이 살인범죄에 대한 억제효과가 있다고. 사형제도의 존치와 집행이 살인범죄 등 강력범죄의 예방효과를 가지려면 그 효과가 입증되어야 한다. 그런데 1988년과 2002년 UN 인권위원회의 광범위한 조사결과 사형제도의 존치가 살인범죄의 발생억제에 특별한 효과가 있음을 밝혀내지 못했다. 우리는 사람의 생명에 대해 참으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가해자의 인권이 중요한 것처럼 피해자의 인권 역시 중시되어야 하며, 실로 더욱 중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사형제가 살인범죄와 같은 강력범죄에 대한 예방효과가 확실하지 않다는 입장이 지배적이고, 적지 않은 분들이 기껏해야 의심스럽다고 한다면, 우리는 의심스러울 때 사람을 죽이는 쪽으로 가야할까, 아니면 사람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할까?

  헌법재판소가 사형제도에 대한 합헌 결정을 하였다고 하여, 우리 헌법규정과 정신이 훼손될 수 없다. 더구나 우리 헌법재판소는 헌법논리로 사형제도의 정당성을 허용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복수감정과 공익적 차원이라는 추상적 내용으로 사형제의 존치를 인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사고는 이미 수백 년 전에 극복된 시대착오적인 입장이다. 형벌은 책임원칙에 부과되어야지 단순한 복수로서의 성격을 가질 수 없다는 보편적인 상식조차 무시한 사고방식은 국제적 조롱거리일 뿐이다.

 

허일태
1951년에 태어나 국민대 법학과를 졸업, 부산대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독일 뷔르추부르크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
위를 받았다. 현재 법무부 형사법개정위원, 한국사형제폐지
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출판저널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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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 아닌 금서’ 가 되어 버린 책

글 유창선 시사평론가 | 베스트셀러의 사회학   

‘금서 아닌 금서’ 가 되어 버린 책

《삼성을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금서(禁書)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랜 것이지만, 금서 문제가 가장 부각되었던 것은 역시 1970~19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이었다.   

  당시 정부는 수많은 체제 비판서들을 ‘불온’ 을 이유로 금서로 지정했다. 그러나 표현과 출판의 자유를 가로막는 금서 지정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들 금서들은 대학가의 베스트셀러로 자리하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그 시절에 대학을 다녔던 세대는 아마 최소한 금서 몇 권 안 읽은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금서들은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이는 당시 정권의 마구잡이식 금서정책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금서 아닌 금서’ 되어 버린 책   

  그런데 금서가 옛날 얘기만은 아닌 듯하다. 2년 전에는 국방부가 자체적으로 금서를 지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생겨나기도 했다. 최근에는 ‘금서가 아닌 금서’ 가 등장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가 지은《삼성을 생각한다》가 그 책이다.   

  삼성 비리고발로 잘 알려진 김 변호사의 이 책은 저자가 삼성에 근무하며 경험했던 여러 비리와 내부의 일들에 대한 증언이 담겨있다. 그러나 삼성의 ‘깊은 곳’ 을 들여다 본 이 책은 출간이 되었어도 제대로 광고를 할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신문사들은 최대 광고주인 삼성과의 관계를 의식한 듯 이 책에 대한 광고를 거절했고, 심지어 인터넷 포털 광고, 지하철 광고마저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런가 하면 대부분의 보수 성향 언론들은 이 책에 대한 소개마저도 철저히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누구에 의해서도 정식으로 금서로 지정된 바는 없었지만,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 책을 사실상 금서 취급하는, ‘금서 아닌 금서’ 가 되어버린 것이다.   

    

소셜 미디어로 전해지는 베스트셀러   

  그러나 언론사들의 광고 사절과 외면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출간 2주일 만에 온라인 서점 판매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바로 트위터(Twitter)를 통한 입소문 때문이었다. 국내 트위터 이용자들은 이 책이 신문광고를 싣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 책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에 자발적으로 나서게 된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순식간에 트위터 상에서 화제의 책으로 부상하였고, 이는 이 책을 베스트셀러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새로운 풍경이었다. 과거 같으면 언론의 외면 속에서 출간과 동시에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를 책이, 이제는 트위터나 블로그라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르는 전대미문의 ‘사건’ 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삼성을 생각한다》가 출간되고 베스트셀러에 오르기까지 있었던 여러 과정은 새로운 사회적 현상이라 할 만큼 사회학적 분석의 의미를 갖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책의 저자인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회장 비서실에 입사하여 7년 동안 재무팀과 법무팀 등에서 일했던 사람이다. 그동안 삼성에 대한 비판이 외부에서 바라본 삼성이었던 반면 김 변호사는 내부에서 겪고 바라본 삼성의 어두운 모습들을 전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글로벌기업 삼성의 내부를 이렇게 속속들이 고발한 책은 출판사상 처음이다.   

  이 책을 통해 삼성은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성역으로 남아있기 어렵게 되었다. 그동안 삼성에 대한 비판자들은 삼성이 한국사회에서 정치권력을 능가하는 경제권력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지적해왔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삼성 이건희 회장과 고위간부들의 여러 전횡과 행태, 심지어 공작에 대한 고발이 가득 담겨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책이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상황은 삼성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성역으로 남아있는 것이 불가능해졌음을 의미한다.   

    

사회변화에 따른 시대적 요구의 산물   

  이런 변화는 물론 김용철이라는 개인의 결심과 용기에 기인한 바가 크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사회변화에 따른 시대적 요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정치의 민주화는 상당 부분 이루어졌다.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정착되었고, 정치권력의 부패와 남용은 제도적으로 감시와 견제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해 경제의 민주화는 아직 숙제로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는 경제적 양극화 해소의 과제와 함께, 경제권력에 대한 사회적 감시와 통제를 통해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이 숙제로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그 대표적 대상으로 삼성이 지목되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늘 삼성의 내부 비리를 고발하는《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이 출간되고 독자들의 커다란 반향 속에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사회적 요구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에 대한 두 가지 시선   

  이 책의 출간은 또한 삼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의 내용을 소재로 한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칼럼이 <경향신문>에 게재되지 못하고 <오마이뉴스>에서는 표현에 대한 의견차이로 게재되지 못한 일이 빚어지면서 우리 사회에서 삼성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돌아보면 그동안 대한민국에는 두 개의 삼성이 존재해왔다. 하나는 편법 상속과 X파일에 등장하는 추한 얼굴의 삼성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경제와 산업을 이끌어가는 엔진 역할을 하는 선한 얼굴의 삼성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삼성이 갖고 있는 이 두 얼굴을 자기 관점에 따라 선택적으로 바라보는 관행이 자리해왔다.   

  진보진영의 삼성 비판자들은 삼성을 한국사회를 망치고 있는 암적인 존재로 바라보며 심지어 삼성의 해체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수진영의 삼성 옹호자들은 삼성이 없는 한국경제는 존재할 수 없다며 삼성의 역할을 찬미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까지는 아니어도, 각자가 서있는 위치에 따라 삼성은 다르게 보인다.       

   

1004_yuchangseon_01삼성과 한국사회 함께 사는 길 찾아야  

  그러나 사실 삼성은 한국경제를 위해 봉사만 하는 고마운 존재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암적 존재도 아니다. 다른 대다수 대기업들이 그러하듯이 한국경제의 중심축 역할을 하면서도, 그 이면에서는 불법과 편법의 관행에 젖어왔던 존재이다. 삼성이 가진 이 두 개의 얼굴을 함께 볼 때 비로소 우리는 삼성의 실체를 제대로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출간은 광고게재 여부를 둘러싼 논란, 삼성 비판 기사의 게재 여부를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지면서 삼성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한층 깊게 만들어주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삼성을 생각한다》에서의 증언들이 단지 고발에만 그치고 만다면 새로운 의미는 없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삼성에 대한 균형 있는 시각 속에서 한국사회와 삼성이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때이다.   

  삼성은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고, 삼성에 대한 비판자들은 삼성의 존재를 인정하는 위에서의 감시를 다할 때 비로소 상생의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출간, 그리고 그 이후 전개된 여러 논쟁들이 그러한 방향 모색을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SBS,
EBS, BBS 라디오 진행자를 역임했다.   

    

<출판저널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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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은현 | 《삼성을 생각한다》의 저자 김용철 변호사 인터뷰   

“이 책이 많이 팔리는 것 자체가 웃긴 현실”

    

‘2007년 양심고백’이후 이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는?
  삼성이 특검이라는 조직에서 수사도 받았는데, 자료집, 백서가 하나도 안 나왔다. 큰 권력자는 대통령 사면으로 풀려났다.  ‘연극은 끝났다’ 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의 단초를 내가 제공했기 때문에, 내 쪽에서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내고 싶었던 것은‘내가 살아있다’‘내가 인간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될 대로 되라’ 는 심정이다. 나머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길 부분이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있는데, 소감이 어떤가.
  이 책이 팔리는 것 자체가 우습다고 생각한다. 공적인 수사와 재판과정을 반대하는 일방적 개인의 주장일 수 있는데, 독자들이 많이 찾는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 일부 언론도 이 책을 무시하는 분위기인데, 독자들이 사서본다는 것은 어느 쪽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이 책에 대한 광고 게재 거부로도 이슈가 됐다.
  더 이상 주류언론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얻고, 이동하는 것이 많다고 들었다. ‘트위터’를 통해 책이 홍보된다는 것을 듣고, 트위터를 사용해 봤는데 이것도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수만 명이 공적 언론이 아닌 새로운 통신 수단을 이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주류 언론의 시스템이 망가졌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삼성에서 7년간 근무하다 비리를 폭로한 것에 비판적인 시각도 있는데?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못 들어봤다. 대부분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책을 안 읽어 본 사람이었다.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바는?
  우리나라는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다. 사회안전망을 희생하면서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 올바른 시스템인지 모르겠다. 엉터리 정치를 봐도 제대로 된 토론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 것 하나 똑바로 작용되는 것이 없는 것 같다.  공적인 수사로 해결되기를 바랐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니 독자들이 읽고, 스스로 판단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다만, 책값이 좀 비싼 점이 미안하다. 출판사에서 결정한 거라 스스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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