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자유주의 이념을 제시한 역작

3월 28, 2010 by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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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한구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 학술

《급진자유주의 정치철학》

 

  이념사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자유주의는 근대 유럽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민주주의는 평등한 시민들이 함께 국정에 참여하는 정치체제를 지향하지만, 자유주의는 유산시민들의 정치사회적 권리에 대한 요구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자유주의는 중세적 봉건체제와 절대왕정을 타파하기 위해, 근대 유럽의 신흥 시민계급이 제창한 저항적 이념이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이 두 이념 간에는 화합하기 어려운 긴장이 존재하며, 때로는 이 긴장이 적대적 대립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뿌리가 다른 두 이념이 결합해서 성립한 수정 자유주의 내지는 수정 민주주의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1003_bookreview_leehangu_01자유주의를 둘러싼 여러 문제점들을 명쾌하게 해명

  최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실패는 자유주의에 대한 불신을 확대시켰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불신을 우려한다. 민주화가 내실을 갖추려면 자유주의의 바탕 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의《급진자유주의 정치철학》은 자유주의를 둘러싼 여러 문제점들을 명쾌하게 해명하면서 우리 시대, 우리 현실에 맞는 새로운 자유주의 이념을 제시한다. 학문적 내공이 온축된 역작이다. 이 책은 전체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충족시키고자 한다. 하나는 자유주의 담론의 보편성에 대한 탐구이며,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가 우리의 현실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의 모색이다.

  “《급진자유주의 정치철학》은 자유주의 담론의 보편성과 구체적 현실에 대한 탐구를 함께 겨냥한다. 그것은 보편사적인 자유주의의 의미를 이해한 토대 위에서 한국 자유주의의 이론과 실천 패러다임을 천착한다.” (5쪽)

  저자가 주장하는 ‘급진자유주의’ 란 어떤 유형의 자유주의인가? 서론격인 1장 ‘급진자유주의와 한국사회’ 에서 저자는 ‘급진자유주의’ 의 원리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논제로 규정한다.(50~56쪽)

1) 급진자유주의는 비판적 자유주의이다.
2) 급진자유주의는 진보적인 혁신 자유주의로서, 성찰적 개인주의를 시금석으로 삼는다.
3) 급진자유주의에서는 민주주의보다 자유주의가 더 선차적이다.

저자는 ‘급진’ 과 ‘비판적’ 을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즉, 이때의 ‘급진성’ 은 ‘비현실적으로 과격하거나 지나치게 성급한 시도’ 라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 ‘자신의 뿌리에 대한 근원적 성찰’ 을 의미한다. 비판은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이며, 사회에 대한 비판이며, 역사에 대한 비판이다.

  급진성에 대한 이런 규정들을 통해서 우리는 저자가 주장하는 급진자유주의가 지금까지 주장되어온 자유주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철저한 반성적 성찰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현실에 적합한 자유주의의 창조적 모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자유주의가 보수에 의해 왜곡, 진보에 의해 폄하

  저자는 한국 현대사에서 자유주의가 보수에 의해 왜곡되었으며, 진보에 의해 폄하되었다고 진단한다. “단적으로 해방 이후 지금까지 자유주의는 한편으로 보수 기득권 집단에 의해 오용되어왔고, 또 다른 한편으로 진보세력에 의해 멸시당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에 대한 이 같은 대응 방식은 둘 다 역사적 자유주의의 합리적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온 것이다.”(24쪽)

  보수 기득권집단이 이해한 자유주의는 자유방임 자유주의라고 저자는 해독한다. 이것은 소극적 자유개념에 의해 인도된 자유지상주의이다. 자유주의의 역사에서 보면 자유지상주의는 낡은 이념이다. 좌파 진보세력은 자유주의에 대한 맑스의 비판에 따라 자유주의를 부르주아의 계급독재를 관철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간주한다. 좌파진보세력의 오류의 근원은 헤겔의‘시민 사회론’을 맑스가 잘못 평가한 데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7장 ‘국가와 헌법의 정치철학-한반도 분단과 통일시대와 관련하여’는 이 책의 앞부분에서 논의한 정치철학적 논의를 한국 현대사 최대의 난제 중 하나인 분단과 통일의 과제와 접합시키는 작업으로 이 책의 백미를 이룬다. 저자는 대표적인 두 통일 담론인 국가수렴론과 분단체제론을 모두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여기서 저자는 227쪽에서 목적 없는 과정으로서의 통일론을 제시한다.

  “나는 ‘어떤 통일인가?’ 를 넘어 ‘왜 통일인가?’ 를 절절히 물어야하는 시점에 우리가 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장은 결국 통일보다 평화가 더 중요하며 비록 더디더라도 평화를 뿌리내리는 일이 오히려 통일의 첩경
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는 저자의 치열한 사유 때문이다.

  저자는 자유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섭렵과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의 현실에 알맞은 자유주의의 새로운 변용을 시도한다. 이러한 시도가 실제로 성공했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다루기 어려운 정치현실의 문제에 대담하게 도전하는 저자의 학문적 용기와 진지성은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모든 주장들이 충분히 소화되어 논의되었다는 점도 장점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쌓은 저자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내용적 측면에서도 저자의 급진자유주의는 많은 부분에서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평가된다. 그렇지만 자유주의에 대한 논의의 심화를 위해 필자는 다음과 갈은 질문을 던진다.

(1) 하이에크의 시장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는 양립 가능한 것인가? 하이에크의 시장주의는 불평등의 해결을 위한 어떠한 처방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진보적 자유주의는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혁신 자유주의는 이런 긴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

(2)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다루면서 민족주의를 배제할 수 있을까? 혁신 자유주의는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자유민주주의와 주체사회주의의 문제로만 다룬다. 그렇지만 남북의 관계가 한국과 일본이나 한국과 중국의 관계와 똑같다고 할 수 없는 한, 민족 통일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의 숙제가 아닐까?

 

<출판저널 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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